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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레깅스 불법촬영은 무죄” 법원, 판결문에 사진 실었다 - 한겨레

[단독] “레깅스 불법촬영은 무죄” 법원, 판결문에 사진 실었다 - 한겨레

불법촬영 남성에게 무죄 판결한 의정부지법
동의 없이 찍은 사진을 공적 기록에 남겨
“사진 기록 가능성 있으면 누가 재판받겠나”
법조계서도 비판…“2차 피해 막을 방안 마련을”
의정부지방법원이 불법 촬영 사진을 판결문에 함께 실어 논란이 확산하고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
의정부지방법원이 불법 촬영 사진을 판결문에 함께 실어 논란이 확산하고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
의정부지방법원 형사1부(재판장 오원찬)가 10월28일, 레깅스 입은 여성을 불법 촬영한 남성에게 무죄를 선고하면서 해당 판결문에 무단 촬영된 피해자 사진을 함께 실은 것으로 확인됐다. 피해자 동의 없이 촬영된 사진을 공적인 기록에 남겨 피해자의 인격권을 침해할 소지가 있다는 논란이 법조계를 중심으로 확산하고 있다. 3일 <한겨레>가 입수한 판결문 원본을 보면, 의정부지법은 “피고인이 휴대전화기의 카메라 촬영 기능을 이용하여 레깅스 바지를 입고 있는 피해자의 엉덩이 부위 등 하반신을 약 8초 동안 피해자 몰래 동영상 촬영하였다”고 공소사실을 기술하면서 해당 영상을 갈무리한 사진을 본문에 함께 실었다. 이 사진에는 피해 여성의 뒷모습 전신이 모자이크 처리 없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의정부지법이 공식 누리집에 올린 판결문엔 검사와 변호인의 개인정보 등이 비공개 처리됐고 해당 사진도 빠져 있다. 하지만 피고인에게 송부된 원본엔 사진이 포함돼 있으며, 이는 다른 판사들도 내부 열람 시스템을 활용해 검색해볼 수 있다. 유죄인 1심 판결을 뒤집고 직권으로 무죄를 선고한 재판부는 “이 사건 동영상은 피고인이 버스에서 내리기 위해 서 있는 피해자의 뒤에서 피해자 몰래 촬영한 것”임을 인정하면서도 △통상적으로 사람의 시야에 비치는 부분을 촬영함 △레깅스가 일상복으로 활용되는데다 ‘스키니진’과 별반 차이가 없음 △피해자의 진술이 불쾌감을 넘어 성적 수치심을 나타낸 것이라고 단정하기 어려움을 무죄의 이유로 들었다. 재판부는 또 피해 여성의 옷차림을 상세히 기술하며 “외부로 직접 노출되는 피해자의 신체 부위는 목 윗부분과 손, 그리고 레깅스 끝단과 운동화 사이의 발목 부분이 전부”라 “성적 수치심을 유발할 수 있는 신체 부위에 해당한다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법조계에선 “신체 부위나 옷차림에 따라 성적 수치심 유발 여부를 따지는 판결 자체도 부적절하지만”(최은순 젠더법학회 회장), ‘동의 없이 촬영된 영상’이란 점을 재판부가 인정하면서도 해당 영상을 갈무리한 사진을 판결문에 실은 것이 부적절하다고 지적한다. 최은순 회장은 “결과를 떠나 사진을 첨부하는 건 초상권 측면에서도 바람직하지 않다”며 “해당 사진이 특정 가능할 정도로 구체적인데다 굳이 필요하지도 않은 사진을 함께 올려 여성을 대상화하고 있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당시 여성이 입고 있던 옷차림은 글만으로도 충분히 설명 가능해 사진 첨부가 필수 불가결한 요소도 아니라는 것이다. 이 판결문을 계기로, 판사들로 구성된 대법원 젠더법연구회에선 제3자에게 판결문을 교부할 때 사진을 가리도록 하거나 검색 제한 조처를 하는 등 추가 대처가 필요하다는 논의를 하고 있다. 젠더법연구회 소속 한 판사는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피해자가 무단 촬영된 자신의 사진을 피고인이 갖고 있는 걸 문제라고 생각해 재판 절차까지 밟았는데, 도리어 재판을 받은 뒤에 공적인 기록물에 사진이 남아 더 큰 피해를 본 격이 됐다”며 “판결문에 사진이 기록될 가능성이 있다고 하면 불법 촬영 피해자 가운데 누가 재판을 받겠다고 하겠나”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그는 “판결문 내용을 어떻게 구성할 것인지는 판사의 재량이지만 재판 과정부터 판결문 작성까지 당사자의 인격권을 보호하며, 인격권 침해의 결과물을 더 많은 사람이 열람하지 못하도록 할 정도의 공적인 책무는 판사에게 존재한다”고도 짚었다. 성폭력 관련 재판을 많이 맡아온 김수정 변호사는 “판결문 열람 제한 조치를 하더라도 피고인은 원문 등사가 가능해 추가로 유포될 가능성도 있다”며 “판결문이 2차 피해를 일으키는 역할을 하지 않도록 판사 대상 인권 교육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박다해 기자 doal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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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1-03 08:36:29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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