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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이사온 동네서 큰 의지… 지친 하루 위로가 돼 준 신부님 - 문화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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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인상(1953∼2010)

정인상 신부님을 2000년도에 처음 뵙게 됐습니다. 당시 저는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이후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느라 인천 계양구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40년간 살던 서울 동작구 노량진 일대를 떠나 낯선 곳에서 새 출발을 하려니 막막했습니다. 일가친척도 없었고 친한 친구도 없었습니다. 게다가 부모님은 연로하셨고 자녀들은 초등학교에 입학한 터라 가장의 책임이 막중했습니다. 제가 의지할 곳은 성당뿐이었습니다.

이사 온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아버님과 어머님이 차례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아버님은 천주교 신자가 아니셨지만 돌아가시기 전에 정 신부님으로부터 세례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아버님은 2000년 여름, 어머님은 이듬해 1월에 돌아가셨습니다. 연달아 돌아가신 부모님의 장례를 치르느라 진땀을 뺐습니다. 챙겨야 할 일도 많았고 정신이 없었습니다. 신부님께서는 저희 부모님의 장례 미사를 집전해주셨을 뿐만 아니라 성당 신자들이 장례를 치르는 데 많은 도움을 줬습니다. 신부님의 말씀 하나하나가 저에게 큰 힘이 됐습니다.

이후 저희 일가족은 열심히 성당을 다녔습니다. 신부님께 감사한 마음이 들었고 살아가면서 더 큰 위로를 받기 위함이었습니다. 우리 가족들은 평일엔 기도 모임을 나갔고 주일엔 미사에 빠짐없이 참석했습니다. 신부님의 강론을 들으면서 지친 하루살이를 위로받았습니다. 사업보다 성당 모임이 우선할 때가 있었고 제 아이들에게도 학원 수업보다 성당 활동에 집중하라고 했습니다. 마음의 평정심을 얻어야 뭐든지 잘할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특히 신부님은 음악적으로 뛰어난 재능을 갖고 계신 분이었습니다. 성가를 직접 작사·작곡하셨고 전문 성악가 못지않은 노래 실력으로 신자들을 매료시켰던 기억이 납니다. 저는 노래를 잘하지 못했던 터라 신부님이 갖고 계신 음악적 재능에 놀라면서도 때로는 부러워했습니다. 또 신부님은 가톨릭대에 출강하던 엘리트였으며 문학적 소양이 깊은 분이셨습니다. 내 아들도 신부님처럼 멋진 어른이 됐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습니다.

2004년 봄을 앞두고 신부님은 경기 부천시로 떠나셨습니다.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도 멀어지는가 봅니다. 제 일가족은 신앙생활을 열심히 했지만, 신부님을 찾아뵙기는 쉽지 않았습니다. 저는 먹고사느라 바빴고 아이들은 학업에 매진했습니다. 마음 한편에서 아쉽고 섭섭했지만 때때로 신부님을 그리워했던 순간들이 있었습니다.

2010년 3월 정 신부님의 부고 소식을 들었습니다. 가슴이 먹먹했습니다. 나에게는 종교 지도자였고 때로는 큰형 같은 분이셨는데 바쁘다는 이유로 찾아뵙지 못한 데 대한 죄송한 마음이 일었습니다. 신부님의 장례식과 장례 미사는 참석했습니다.

존경하는 정인상 신부님! 제가 어느덧 신부님의 생전 나이를 훌쩍 뛰어넘었습니다. 저도 신부님처럼 누군가에게 큰 힘이 되는 사람이 되기 위해 애쓰고 있습니다. 한참 늦었지만 감사하다는 뜻을 전합니다.

신자 전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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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ly 08, 2020 at 09:09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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