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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목소리’ 대하는 법[서광원의 자연과 삶]〈25〉 -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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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광원 인간자연생명력연구소장
아프리카 사바나 지역에 사는 비비원숭이들은 상당히 거칠다. 보통 몇십 마리에서 100여 마리까지 무리를 이루고 살다 보니 다툼도 잦다.

미국 스탠퍼드대 로버트 새폴스키 교수는 이들에 대한 관찰로 유명한데 한번은 당혹스러운 일이 일어났다. 집중 관찰 중이던 무리의 영향력 있던 많은 수컷들이 갑자기 죽어버린 것이다. 이들은 공격적인 데다 몸집이 크고 싸움에도 능해 매일 근처에 있던 관광객 숙소로 먹이 사냥을 떠나곤 했다. 관광객들이 버리고 간 음식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여기를 가려면 다른 무리의 세력권을 지나야 했기에 거친 녀석들만 갈 수 있었는데, 어느 날 세균에 오염된 고기를 먹고 모두 저세상으로 가고 말았던 것이다.

연구팀의 낙심과 달리 무리에서는 뜻밖의 일이 일어났다. 거친 분위기가 사라지고 평화가 그 자리를 대신했다. 공격적인 녀석들이 한꺼번에 사라진 덕분이었다. 일시적인 현상이 아니었다. 10년이 지나서도 마찬가지였다. 비비원숭이들은 근친혼을 피하기 위해 수컷이 태어난 무리를 떠나 다른 무리로 이동하기에 10년이면 무리를 이루는 수컷이 거의 완전히 교체되는 편이다. 그래서 예전의 ‘전통’이 다시 살아날 수 있었는데 그러지 않았다. 우리의 수다에 해당하는 털 고르기가 다른 무리들보다 훨씬 많았고 스트레스가 현저하게 낮았다. 새로운 전통이 자리를 잡은 것이다.


‘침팬지 폴리틱스’로 유명한 영장류 학자 프란스 드 발은 ‘내 안의 유인원’에서 새로운 삶의 방식이 자리를 잡은 건 거친 존재들이 일시에 사라지면서 남은 구성원들의 평화스러운 방식이 주류가 되었기 때문일 것이라고 했다. 실제로 비비원숭이 사회는 거칠고 난폭하지만 이런 걸 상쇄하며 집단을 지속 가능케 하는 괜찮은 장치도 많다. 예를 들어 괴롭힘당하는 약한 녀석이 ‘이이이’ 하며 소리를 지르면 서열 높은 ‘분’들이 나서 괴롭히는 놈을 혼내준다. 약자를 보호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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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강한 녀석이 우두머리가 되지만 나이 많고 지혜로운 존재를 무시하지 않고 대체로 그들의 뜻을 따른다. 이동하는 방향 등을 결정할 때 그렇다. 무리가 인정하는 이 원로 그룹은 보통 두세 마리로 이루어지는데 긴 은빛 털이 온몸을 감싸고 있어 묘한 위엄까지 풍긴다. 앞의 무리는 이런 좋은 면을 강화시키고 선순환시켰을 것이다.

어디서나 거칠고 목소리 큰 존재들은 언제나 집단을 장악하려고 한다. 하지만 집단을 잘 이끌지도 성장시키지도 못한다. 반대로 이들이 사라질 때 집단의 생명력이 살아난다. 우리가 에스키모로 부르는 이누이트족은 마을 회의 때 목소리를 높이는 사람이 있으면 추방시켰다고 한다. 이들에게 추방은 죽음 다음의 형벌이다. 목소리 큰 사람이 잘나가는 사회는 뭔가 잘못된 것이다. 큰 목소리에 지혜가 담겨 있는 일이 드물기 때문이다.


서광원 인간자연생명력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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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gust 31, 2020 at 01:00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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