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절은 어떤 고가의 장비나 의술보다 큰 효과
누군가의 친절로 감동을 받은 적이 있을 것이다. 또는 의도하지 않았던 나의 작은 친절로 누군가에게 큰 감동을 준 경험도 있을 것이다. 친절이란 무엇인가. “대하는 태도가 매우 정겹고 고분고분함 또는 그런 태도”라고 국어사전에 나와 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정겹고 고분고분함’보다 소중한 것이 있을까. 특히 어느 한 쪽이 정신적‧육체적으로 나약한 상황이라면, 그 힘은 더욱 클 것이다.
일전에 아버지를 모시고 병원을 다니며 겪었던 일이 뇌리에서 떠나지 않아, 다시 한 번 상기해보려고 한다.
아흔 중반의 연세에도 스스로 건강관리를 잘하시는, 아버지의 다리가 불편해지기 시작한 것은 작년 말부터였다고 한다. 한쪽 다리의 종아리에 검붉은 색소가 침착되고, 풍선을 불어놓은 것처럼 탱글탱글하게 붓고, 때로 바늘로 찌르는 듯 통증이 동반되셨다고 한다. 그러나 코로나19 사태로 몇 개월 동안 부모님 댁을 방문하지 못했던 자식들은 상황을 인지하지 못한 채 시간이 흘러버렸던 것이다.
참기 힘든 통증으로 가까운 종합병원을 찾았을 때, 정형외과에서 X-ray 등 몇 가지 검사와 촉진을 통해 ‘다리가 썩어 들어가고 있다’며, ‘이대로 있다가는 다리를 절단할 수 있고, 급기야 사망에 이를 수도 있다’는 설명과 함께 혈관 병동으로 입원하게 되셨다. 그러나 일주일 정도의 치료과정이 만족스럽지 못해 아버지는 퇴원을 원하셨고, 의사는 ‘더 큰 병원으로 가보라’며 소견서를 내밀었다. 놀란 가슴에 대학병원으로 가보았으나, 혈관 분야 전문의를 만나기 위해서는 한 달을 기다려야 할 형편이었다.
그러던 중 ‘피부암’에 대한 신문기사를 읽으신 아버지가 겉으로 드러난 질병의 양태(樣態)가 당신의 것과 비슷하다며 피부 전문 병원을 찾게 되셨고, 거기서 ‘하지정맥류’ 진단을 받았던 것이다. 지인으로부터 소개 받은 하지정맥류 전문 진료기관인 흉부외과에서는, 코로나19 영향으로 동행인의 방문을 제한했으나 환자가 고령인데다 청각 장애가 있어 둘째 여식인 나는 보호자로서 예약과 상담, 검사, 진료 등 모든 과정에 동반하게 되었다.
상가가 밀집된 부산의 시내 중심가, 메디컬 빌딩의 한 층을 차지한 병원은 매우 깨끗하고 정돈된 느낌이었다. 별도로 마련된 상담실에서 앳된 간호사가 환자의 종아리를 두 손으로 감싸며 증상이 언제부터 시작됐는지, 현재의 상태는 어떤지 등 문진을 하는 모습에 성의가 배어있었다. 컴퓨터 화면을 통한 질병의 원인과 종류, 치료법 등에 대한 설명으로, 누구에게나 발생할 수 있는 질병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진료실에서 만난 의사도 초음파 검사를 하며, 환자를 이웃 어른 모시듯 자상한 설명과 궁금한 점을 말할 기회를 주었다. 모처럼 말문을 연 아버지는 10여 년 전 벌레에 물렸던 기억부터 여러 피부과와 한의원, 종합병원과 대학병원을 전전했던 경험을 고백하듯 풀어놓으셨다. 두서없는 환자의 말을 고개 끄덕이며 끝까지 들어주었던 것이 고마웠는지, 의기소침했던 아버지의 표정은 한결 편안해지셨다. ‘수술비용이 비싼데 비해 연세 많으신 환자의 만족도가 어느 정도일지 의문’이라는 의사의 말에도 진심이 묻어났다.
의사와 간호사들의 표정과 행동은 꾸밈없이 진지하고 자연스러웠다. 고주파 시술을 앞두고 소파에서 쉬고 있던 아버지 앞에 무릎을 구부려 “어르신, 걱정되십니까? 불편하지 않도록 해드리겠습니다”라는 의사의 말에도 짙은 신뢰감이 느껴졌다. 환자의 의견을 경청하고, 긴장으로 옴츠린 환자와 눈높이를 같이 하는 자세는 보호자의 눈에도 온기로 다가왔다. 무엇보다 환자의 여린 마음을 따뜻하게 보듬어주는 친절과 긍정의 말이, 어떤 고가(高價)의 장비나 뛰어난 의술(醫術)보다 큰 효과가 있음이 분명했다.
같은 질병을 두고 ‘당장 치료하지 않으면, 다리를 절단하거나 사망에 이를 수도 있다’는 종합병원 의사와 ‘불편하지 않게 해드리겠다’는 흉부외과 의사의 상반된 반응에, 아버지는 내심 지옥과 천당을 번갈아 다녀온 느낌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을 것 같다.
한 사람은 여러 사람을 바꿀 수 있고, 여러 사람은 사회를 바꿀 수 있다고 한다. 차츰 웃음을 잃어가고 있는 요즘, 친절은 계산으로 따질 수 없는 미덕이요 화합의 양념이 아닐까 싶다. 작은 친절과 긍정의 표현이 주는 감동이 소리 없이 주변으로 널리 번져나갈 수 있으면 좋겠다.
September 03, 2020 at 08:00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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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친절 큰 감동 - 시니어매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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